책보다 재밌는 영화가 세상에 있을까?

요즘엔 영화관 가는 게 왠지 부담스럽다. 팝콘 값이 만 원을 훌쩍 넘고, 좌석은 예약제다 보니 마음만 앞선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극장의 관객 수는 회복 중이지만, 여전히 예전만 못하다는 통계도 본 적 있다. 그래도 집에서 넷플릭스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특히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로 보면 그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원작을 먼저 읽는 편인데, 때로는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기도 한다. 그 순서에 따라 작품을 받아들이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오늘은 내가 최근에 본 영화 몇 편과, 그 원작 소설 이야기를 좀 풀어볼까 한다.

먼저 ‘파묘’라는 영화를 봤다. 아는 지인이 강력 추천해서 봤는데, 원래는 풍수와 무속을 다룬 한국적 오컬트 장르라 큰 기대를 안 했었다. 평소에 공포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인데, 이건 오컬트와 미스터리가 섞여서 오히려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스토리가 촘촘하게 짜여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장재현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이 영화는 한국 고유의 샤머니즘과 일본 식민지 역사를 교묘하게 엮었다. 한겨레의 리뷰에 따르면, “묘지 이장이라는 전통적 소재를 글로벌 공포 코드로 재탄생시켰다”고 평가했는데, 정말 그랬다. 영화를 보고 나서 관련 서적을 찾아보게 될 줄은 몰랐다. 실제로 나는 한국 무속 신앙에 대한 교양 서적을 몇 권 주문했는데, 아직 다 읽지는 못했다. 영화 속 굿 장면이 너무 인상 깊어서, 실제 무속 의식과 얼마나 비슷한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영화는 고증을 꽤 철저히 했다는 후문이다.

두 번째로 본 영화는 ‘듄: 파트 2’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기대를 안 할 수 없었다. 원작 소설은 프랭크 허버트가 1965년에 쓴 고전이다. 사실 ‘듄’ 시리즈는 과학소설(SF) 팬들 사이에서는 성경 같은 책이다. 나는 대학 시절에 원작을 읽었는데, 그 방대한 세계관에 압도된 기억이 있다. 그런데 데니스 빌뉴브 감독이 영화로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각색했을지 궁금했다. 실제로 영화는 원작의 정치적 음모와 생태학적 메시지를 압축해서 보여줬다. 제국의 첩보전과 모래언덕 위의 전투 장면은 압권이었다. 특히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폴 아트레이데스의 내적 갈등이 영화에서는 원작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원작을 읽은 독자라면, 영화가 폴의 예지 능력과 그로 인한 고뇌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 폴은 끊임없이 미래의 가능성을 보며 선택의 무게에 짓눌리지만, 영화는 시각적 효과에 치중하다 보니 그 내면이 다소 희석되었다.

물론 영화가 원작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듄’ 원작 소설에는 폴의 내면 독백과 정치적 계산이 훨씬 더 자세히 나온다. 예를 들어, 프레멘족과의 연대 과정에서 그가 느끼는 책임감과 두려움은 책에서 더 깊이 묘사된다. 영화는 시각적 효과에 집중하다 보니 이런 심리적 깊이가 다소 얕아졌다. 그래도 나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는 걸 추천한다. 영화가 전체적인 세계관을 잡아주면, 책을 읽을 때 상상력이 더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친구 중 한 명은 영화 ‘듄: 파트 1’을 보고 충격을 받아 원작 전권을 샀는데, “책이 더 재미있다”며 영화를 다시 보니 이해가 더 잘 됐다고 했다.

영화와 책을 비교하다 보면, 문학과 영화라는 서로 다른 매체의 특성이 드러난다. 문학은 언어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영화는 이미지로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둘 다 나름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유난히 많다. ‘재벌집 막내아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작품들이 그렇다. 원작 웹소설을 먼저 접한 독자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 장면이 왜 빠졌어?’ 하며 아쉬워한다. 하지만 나는 작품마다 각 매체가 가진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재벌집 막내아들’의 원작은 회귀물의 전형을 따르며 긴 호흡으로 독자를 사로잡지만, 드라마는 16부작 안에 스토리를 압축해야 했기에 많은 부분이 생략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로 원작의 재미를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영화 ‘파묘’의 경우, 원작 대본이 따로 있다. 각본가가 시나리오를 쓸 때 영화의 러닝타임과 시각적 효과를 고려해서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덜어냈다. 감독의 인터뷰를 인용한 YTN 기사를 보면, “원래 시나리오에는 더 많은 역사적 배경이 있었지만, 영화의 흐름을 위해 과감히 생략했다”고 한다. 이처럼 영화는 선택과 집중의 예술이다. 모든 내용을 담으려다가는 지루한 작품이 되기 십상이다. 나는 이 점에서 각색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원작의 정수를 살리면서도 영화만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예를 들자면, ‘기생충’은 원작 소설이 없지만, 봉준호 감독이 각본을 쓰면서 수많은 아이디어를 덧붙였다고 한다. 이 영화는 원작이 없음에도 완성도가 높아서, 오히려 원작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게 만든다. 반대로 ‘해리 포터’ 시리즈는 원작이 워낙 방대해서 영화로 모든 것을 담지 못했지만, 팬들은 각색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영화만의 매력을 인정한다. 특히 호그와트의 모습을 시각화한 것은 영화의 큰 공헌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영화를 볼 때마다 ‘이 영화가 원작 소설이 있다면 어떤 점을 살렸을까, 어떤 점을 버렸을까’를 생각하며 본다. 이렇게 비교하며 보면 영화가 더 재미있어진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듄: 파트 2’에서 폴이 모래벌레를 타는 장면은 원작에서 단 몇 줄로 묘사되지만, 영화에서는 10분 가까이 화려한 액션으로 펼쳐진다. 이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영화 ‘파묘’에서는 원작이 없음에도, 각본가가 실제 풍수 지식을 바탕으로 대사를 구성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풍수에 대한 책을 한 권 빌려 읽었는데, 영화 속 설명이 실제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원작을 얼마나 충실히 따랐느냐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작품으로서 완성도를 갖췄느냐다. ‘파묘’가 원작 소설이 없는데도 완성도가 높은 이유는, 각본 자체가 영화 매체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듄’은 원작이 워낙 방대해서 영화로 완벽히 옮기기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었다. 빌뉴브 감독은 그 숙제를 꽤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여전히 원작의 정치적 음모와 생태학적 메시지가 더 깊이 있게 다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영화와 책 중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둘 다 각자의 즐거움이 있다. 나는 앞으로도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보면 꼭 책도 읽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그 비교를 블로그에 기록해두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만 보고 끝내지만, 책까지 읽으면 그 작품을 훨씬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여러분도 시간이 된다면 영화 본 후 원작 소설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생각보다 깊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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